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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아라시야마(嵐山) 및 주변 신사

여행을 떠나기 전 자료를 정리해 보았다. 주로 일본 위키피디아를 참고해 작성했다.


아라시야마

아라시야마는 벚꽃과 단풍의 명소이다. 일본의 벚꽃 명소 100선 및 일본의 단풍 명소 100선에 선정되어 있다. 교토 시내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 ~ 1185)에 귀족의 별장지가 된 이래 교토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아라시야마의 중심부를 흐르는 카츠라강(桂川)에 있는 토게츠교(渡月橋; 달을 건너는 다리)는 아라시야마의 상징이다. 또한 토게츠교를 끼고 상류가 오이(大堰), 하류가 카츠라강(桂川)이 된다. JR 산인선(山陰線) 북쪽에는 사가노(嵯峨野)라 불리우는 관광지가 펼쳐져 있다.

 

원래는 사찰 탐방과 단풍 등 경관을 둘러보는 것이 관광의 주가 되었다. 1980년대에는 토게츠교 북쪽을 중심으로 인기 연예인이 운영하는 가게가 급증하고 수학여행하는 학생들로 붐비게 되었지만 본래의 분위기를 파괴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일본의 버블 붕괴(1990년 일본의 경제 대폭락) 이후 이러한 연예인 운영 가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1990년대 이후 소규모 박물관이 잇따라 개관되었고 2004년에는 온천이 개발되었다.

 


텐류지(天龍寺, 천룡사)

텐류지의 위치에는 헤이안 시대 초기, 사가천황(嵯峨天皇, 809 ~ 823)의 황후 타치바나노 카치코(橘嘉智子)가 세운 단린지(檀林寺, 단림사;단군이 계신 숲)가 있었다. 그 후 약 4세기를 거쳐 황폐해진 단린지의 터에 고사가천황(後嵯峨天皇, 1242 ~ 1246)과 그 태자인 카메야마천황(亀山天皇, 1259 ~ 1274)은 별궁을 지어 이름을 카메야마토노(亀山殿)이라 창했다. 카메야마(亀山)란 텐류지의 서쪽에 있는 단풍의 명소로 알려진 오구라야마(小倉山)를 말하는 것으로 산의 형상이 거북이의 등껍질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텐류지의 산의 호칭인 레키산(霊亀山) 또한 여기서 온 이름이다.


무로마치 막부를 세운 초대 쇼군인 아시카가 타카우지(足利尊氏)가 고다이고천황(後醍醐天皇)의 명복을 빌기 위해 1339, 다이카쿠지토(大覚寺統, 대각사파, 카메야마천황의 파벌)의 별궁이었던 카메야마토노를 절로 개조한 것이 텐류지이다. 거대한 사원의 건설을 위해 타카우지는 원나라와의 무역을 개시하고 그 이익을 건설 비용으로 충당했다. 사원은 거듭된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메이지 시대(1868 ~ 1912)에 재건된 것들이다. 현재 경내의 넓이는 약 9만평 정도로 창건 시의 1/10 정도의 넓이이다.



노노미야신사(野宮神社)

토요스키이리비메노미코토(豊鍬入姫命, 10대 스진 천황의 3)를 끝으로 한 이세신궁(伊勢神宮, 일본 각지에 걸쳐 있는 씨족신을 대표하는 총본산, 일본 천황 가문의 선조이자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모신다)에서 봉사하는 사이오(斎王, 이세신궁에 봉사하는 미혼의 여자 황족)가 이세로 향하기 전에 목욕재계를 한 노미야(野宮)에서 유래한 신사라 전해진다.


천황이 대를 변경하면 미혼 황녀와 여왕(평균 12, 최연소 2, 최고령 28) 중에서 새로운 사이오가 점을 통해 선택되어 궁중의 첫 사이오로서 1년간 사가노(嵯峨野)의 맑은 장소를 선택하여 지어진 외궁(野宮, 노미야)에서 목욕재계한 후 이세로 가 이세신궁의 제사에 임하였다. 그 때의 행렬을 사이오군코(斎王群行)라고 부르며 1998년부터 매년 10월의 제례에서 그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사이오의 제도는 남북국시대, 고다이고천황(後醍醐天皇, 1318 ~ 1339)의 대에 사치코나이신오(祥子内親王, 고다이고천황의 2)를 마지막으로 폐지하고, 그 이후로는 아메테라스오카미를 모시는 신사로 존속하고 있었지만 거듭된 전쟁으로 쇠퇴하였다. 후에 고나라천황(後奈良天皇, 1497 ~ 1557), 나카미카도천황(中御門天皇, 1702 ~ 1737)에 의해 재건되어 현재까지 황실의 두터운 숭배를 받고 있다.

 


햐쿠닌잇슈(百人一首)

100명의 시인(歌人)의 와카(和歌, 일본의 고전시)를 한 명에 한 수(一人一首, ;, 시나 노래를 세는 단위)씩 뽑아 지어진 노래집이다. 그 중에서도 후지와라노 사다이에(藤原定家, 1162 ~ 1241)가 교토의 오구라야마(小倉山)의 산장에서 선택했다고 하는 오구라햐쿠닌잇슈(小倉百人一首)는 우타가루타(がるた일본에서 새해에 하는 카드 게임)로 널리 사용되어 일반적으로 햐쿠닌잇슈라 하면 오구라햐쿠닌잇슈를 말한다.

 


니손인(二尊院, 이존원)

니손인의 이름은 본당의 '발견의 석가불(発遣, 할 일을 맡겨서 보냄)''내영의 아미타불(来迎, 임종 때 부처나 보살이 극락정도로 맞아들이러 옴)'의 두 여래상에서 유래한다.

절의 정문을 통과한 뒤 '단풍의 경마장(紅葉馬場)'이라 불리우는 참배길은 단풍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또한 안쪽 깊숙이에는 햐쿠닌잇슈와 관련된 후지와라노 사다이에가 운영한 산장 시구레테이(時雨亭)의 터라고 전해지는 장소가 있다.

 


죠오쟉코오(常寂光寺, 상적광사)

햐쿠닌잇슈에서 시로 읊어지는 오구라야마의 중턱의 경사면에 있어, 경내에서 사가노 시내를 한 번에 바라볼 수 있다. 경내의 정원에는 200여 그루의 단풍나무가 심어져 있어 항상 적막하고 빛나는 땅(常寂光土)의 모습에서 절의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헤이안 시대에 후지와라노 사다이에의 산장 시구레테이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땅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인 1596년 일련종의 대본산인 혼코쿠지(本圀寺)16번째 주지 닛신(日禎)이 은거지로서 이 산을 택했다.

시인이기도 한 닛신에게 오구라야마의 기슭의 땅을 기부한 것은 스미노쿠라 료오리(角倉了以)와 스미노쿠라 소오안(角倉栄可)으로 코바야카와 히데아키(小早川秀秋) 다이묘(大名, 과거 일본의 영주 신분)가 기부로서 탑과 사원의 건설을 진행하여 정비가 이루어졌다.

오구라햐쿠닌잇슈 안에 기록되어 있는 와카(和歌) 중에서 우다상왕(宇多法皇, 양위 한 천황)이 사가(嵯峨)의 오이(大堰)강에 행차했을 때 주변의 단풍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들인 다이고천황(醍醐天皇, 885 ~ 930)에게도 보여주고 싶다."고 한 것을 함께 하고 있던 후지와라노 타다히라(藤原忠平)가 우다상왕의 마음을 와카(和歌)에 빌려 읊은 것이 있다. 오구라야마는 시의 소재로도 유명하여 많은 와카에서 읊어지고 있다.

 

小倉山 
のもみじ 
あらば 
ひとたびの 
みゆきたなむ

오구라야마 봉우리의 단풍이여, 만약 너에게 상냥한 마음이 있다면, 다음 행차가 있을 때까지 흩어지지 말고 아름다운 채로 기다려 주길.

 

ばれむ 

ともなしに 

小倉山 

軒端 

なれてひさしき

나는 오쿠라야마의 이 집의 처마 끝 소나무야.

이렇게 서 있는데도, 저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사랑받지 못한 채로, 계속 혼자 기다린 지 오래야.

 

이 후지와라노 사다이에의 시에 의해 죠쟉코지(常寂光寺)는 노키바지(軒端寺, 軒端;처마 끝)라고도 불리고 있다.


사가노・아라시야마 지도